4월의 제주도를 생각하며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글·사진 김영갑, Human & Books·13,500원









4월의 제주도. 따스한 봄기운 아래 유채꽃이 만발한 제주의 들녘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다. 한편 4월의 제주도는 상상만으로도 슬프다. 1940년대 후반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지만 4.3 민주항쟁과 대량학살, 주민들이 겪었을 역사의 시간 앞에 마주섰을 때 제주는 아픈 기억으로 다가온다. 권력을 위해 희생되었던 생명들이 남긴 역사의 흔적은 깊은 상흔이 되어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사회는 줄곧 고개를 숙이게 하는 사건들을 마주해오고 있다. 유신정권시대, 80년의 광주, IMF의 긴 터널과 최근의 용산참사. 하지만 「그 섬에 내가 있었네」에 담긴 김영갑 작가가 남긴 만발한 유채꽃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굴곡 속에서도, 겨울이 지나면 어김없이 봄이 오는 것처럼 그렇게 다시 소생하는 기운으로 우리의 역사는 새롭게 만들어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제주도는 아름답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아내와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올레길을 걸었던 순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리고 또 한 곳. 두모악이 기억에 남는다. 제주의 역동하는 사진을 남기고 간 故 김영갑 작가의 작품과 체취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김영갑 갤러리 - 두모악이다. 사실 두모악에서만 김영갑 작가의 작품과 체취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주의 산과 바다, 나무와 바람, 쾌청한 하늘을 볼 수 있는 어느 곳에서든 김영갑의 작품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80년대 초반 제주도를 오르내리며 사진 작업을 하던 중 제주도가 좋아 아예 섬에 정착한 작가 김영갑은 섬 곳곳에 발길을 디디며 제주의 아름다움을 앵글에 담는데 평생을 바쳤다. 밥을 굶어도, 잠자리가 불편해도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감내할 수 있었던 그는 루게릭 병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6년간 투병생활을 하던 중 2005년 세상을 떠나 영원히 제주에 머물게 됐다. 투병생활이라고 해서 병원에 누워 6년을 보낸 것은 아니다. 투병기간 중 김영갑은 머지않은 긴 안식의 시간을 바라보며 자신이 작업한 사진들을 위해 폐교를 개조하여 사진 갤러리를 남겼다. 그리고 머지않은 긴 안식의 시간을 바라보며 글을 남겼다. 그 글이 바로 「그 섬에 내가 있었네」이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는 제주의 모든 생명과 함께 지내며 모든 생명 앞에서 겸허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감히 말하건대 그는 결코 단 한 장의 사진을 건지기 위하여 탐욕적으로 사진 작업을 하지 않았다. 모진 비바람,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시선, 필름을 사기 위해 배를 곯아야 했던 시절. 그는 모든 과정을 받아들이며 이겨냈다. 그가 남긴 아름다운 사진은 결국 자연이 주는 선물이었다. 그렇게 그는 모든 생명 앞에서 겸손했다. 모든 생명이 보여주고 가르쳐주는 섭리 앞에서 병마와 싸운 자신의 삶마저도 선물로 받아들인 용기 있는 사람 김영갑. 그의 글과 사진에 담긴 삶의 철학은 무엇을 위해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고민을 놓치고 살아가는 분주한 일상 앞에 정신을 일깨우는 쉼표가 된다. 그의 글을 곱씹으며 얼룩진 생(生)일지라도 여전히 아름답게 피워갈 희망을 발견한다. 김영갑의 사진과 글을 만나며 4월의 제주도는 그렇게 희망으로 재해석된다.


“여전히 풀과 나무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뽑혀나간 뿌리로 땅을 짚고 새 줄기와 가지를 키워 올립니다.

부러진 줄기와 가지를 추슬러 새순이 움트게 합니다.

끊임없는 비극과 고통 속에서도 풀과 나무들은 비명 한번 내지르지 않고, 불평 한번 없이,

절대로 도망치는 법도 없이 묵묵히 새 삶을 준비합니다.

다가오는 비극과 고통이 그들을 오히려 더 강한 존재로 만들어줍니다.

나에게도 비극과 고통이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는 것입니다.

이때 들판은 나에게 가르쳐줍니다.

어떻게 하면 시련을 성장의 또 다른 기회로 만들 수 있는지를…."

by 현기쯩 | 2009/05/01 11:34 | Books | 트랙백 | 덧글(0)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_ 신영복

일상적 관계 속에서 기질의 차이로 불편함을 겪고 싸우는 경우는 다반사다.
그런 경우는 쉽게 풀린다.
입장이 동일하지 않을 때 불편함을 겪고 싸우는 경우는 기질의 차이로 인한 갈등에 비해선 흔치 않은 것 같다.
그런 경우는 쉽게 풀기도 어렵다.
그래서인가보다. 
'입장의 동일함'을 위해 주고 받는 갈등의 빈도가 적은 이유가.
하지만 관계의 질적 성장을 위해서는 입장의 동일함을 위해 힘써야 하지 않을까.

by 현기쯩 | 2009/04/15 14:07 | Analects | 트랙백 | 덧글(0)

<뉴라이트 비판>

<뉴라이트 비판>

김기협 지음, 돌베개·10,000원

MB 정부가 들어선 후부터 ‘뉴라이트’라는 단어는 여러 매체를 통해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유독 MB정부가 들어선 이후 ‘역사 교과서 파동’, ‘건국절 논란’등의 사건으로 ‘뉴라이트’가 부각되는 이유는 왜일까? 그리고 그들은 왜 MB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들과 연계되어 거론되는 것일까? 과연 ‘뉴라이트’의 실체가 무엇인가? 실체가 있기는 한가?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의 길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행동과 말투는 즉흥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한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들이 축적되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비판』에서는 ‘뉴라이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뉴라이트를 구성하는 근본철학을 하나하나 곱씹는다. 그들의 태생을 살피는 것이다. 『뉴라이트 비판』의 저자 김기협은 역사비평가 답게 2008년 뉴라이트가 부각될 수 있었던 주요 사건인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파동’과 ‘건국절 논란’이 뉴라이트의 정략적 수준(‘함량미달’이라는 표현도 사용한다)의 사관에서 비롯됐음을 이야기하며 그 사관이 결국 신자유주의 사회를 지향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뉴라이트 사관은 경제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기 때문에 식민지도 옹호하고 독재정치도 옹호한다. 이러한 뉴라이트 사관이 ‘부자’되는 나라, 오로지 ‘경제성장’만 하면 된다는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뉴라이트 사관이 (결과적으로)옹호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과연 국민 모두를 부자로 만들고,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뉴라이트 비판』에서는 뉴라이트의 행보에 대해 회의적이다. 저자는 뉴라이트 사관이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설정하는 한계 안에 갇혀 있는 것을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한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가 맞지만, 이기적인 면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본다면 인간사회는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작동하는 정글이 되어버린다. 정글의 법칙이 통하는 사회에서는 모든 정책이 강한 자가 살아남기 유리하도록 작동 된다. 강자의 입장에서 다른 이들의 힘이 세진 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약육강식의 정글과도 같은 사회에서는 환율 정책, 부동산 정책, 제세 등 모든 경제 운용이 힘 있는 자를 위한 방향으로 설정된다. 뉴라이트 사관이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옹호한다는 말은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설정하여 역사이야기를 펼치는 뉴라이트의 철학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저자는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설정하는 뉴라이트 역사가들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전개해 간다.


뉴라이트는 지금도 꾸준히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목소리 중 ‘하나’인 뉴라이트가 아무리 싫다는 사람들도 목소리 자체를 ‘입막음’ 할 수 는 없을 것이다. 『뉴라이트 비판』도 뉴라이트를 비판하는 하나의 목소리로서 존중되고 울려 퍼져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 사회에 ‘주체성’과 ‘새로운 담론’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 같다. 경제성장이라면 이것도 저것도 다 옳다는 주장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아닌지 스스로 생각하고, 분별하고, 행동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이기적 존재’의 한계를 넘어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새로운 가치와 담론, 생활양식의 생성이 촉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뉴라이트 비판』은 독자들로 하여금 한국사회 성찰의 계기를 주는 것 같다. 현 정부의 정책의 중심에 있는 뉴라이트의 폐해를 전방위적 비판하기 때문이다. 비판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때이다.

by 현기쯩 | 2009/03/31 16:08 | Book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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